강남구 응급현장에서 그 를 만나다!!
강남소방서 영동 119 안전센터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 함께한다. 황톳빛 가득한 소방복들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하얀 가운과 목에 걸린 은빛 청진기, 황규석 원장이다. 화재나 구급 출동이 발생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동행하는 그는, 현장에서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이고 그 누구보다 바쁘게 환자를 돌본다. 어느 때보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는 화재 현장, 단 1초 차이로 환자의 생사가 갈리는 응급 출동 현장에서 황규석 원장은 절대 없어선 안 될 ‘진짜 의사’다. 그는 왜 병원이 아닌 119 출동 현장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의사가 있는 곳, 유치원생도 알 법한 룰(rule)을 깬 황규석 원장. 그의 독특 하지만 대담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Q. 간단히 자신을 소개 한다면.
강남구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현재 강남구 의사회장직을 맡고 있고, 서울시 의사회· 대한의사협회에서 작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강남소방서 영동 119 안전센터 구급대원 활동은 의사회 차원의 활동인가?
그건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전임 김윤섭 강남소방서장님과 의사회 차원의 활동을 계획해 왔습니다만, 여러 가지 여건상 현실화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소방청과의 협의, 강남구 의사회 회원들의 협조, 관련 법규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간단히 결정하고 시스템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남소방서의 허락과 통제를 전제로 저부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앞으로 관련 기관의 허락과 취지를 공감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께서 많이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성형외과 의사와 119. 쉽게 연상되는 조합은 아니다. 어떻게 강남 소방서 안전센터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나?
요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구급대원들과 현장에 나가면 환자, 보호자들이 저를 보고 의아해하시기도 하고, 응급실에서 만나는 의사들마저도 신기하게 쳐다보긴 하더군요. 의사가 의료지원이 필요한 곳에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그동안 강남구 의사회 회원으로서 몇몇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해 왔습니다. 하지만, COVID 19 팬데믹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대면을 통한 지원이나 활동이 힘들게 되었고, 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119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협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길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전임 서장님과 새로 부임하신 윤득주 강남소방서장님께서 취지를 높이 평가해 주셔서 지난해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의사로서 참여할 수 있는 공헌 활동이 많을 것이다, 왜 119 인가요?
COVID 19 극복을 위해 많은 의료진이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고 진료하고 계십니다. 선별진료소를 비롯해 각 의료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데, 제 이야기를 꺼내기가 부끄럽습니다.
COVID 19 상황이 심각해 지면서 지역 의사회장으로서 정부와의 방역대책 수립, 의료인 수급 문제 등 의료계 차원의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현장에 가장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COVID 19 바이러스가 위험한 이유는 전염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원이나 선별진료소에서는 그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죠. 하지만 119 구급대원들은 본인들이 어떤 상황의 환자를, 어떤 준비를 하고 만나는지 사전에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검사나 치료를 위한 의료현장보다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들께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Q, 구급대에서 하는 역할과 참여 빈도는 어떻게 되는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제 역할은 미미합니다. 저는 2~3주에 한 번씩 병원 진료를 마친 후에 영동 119 안전센터에 나옵니다. 영동센터 구급 2팀 세분과 한팀으로 출동하는데,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9시 교대가 이루어질 때까지 구급대원들을 돕고 있습니다.
강남소방서 영동센터는 상시 2개 구급팀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제가 속한 팀이 2~3주에 하루 야근 근무가 돌아오기 때문에 자주 구급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Q. 운영하는 병원의 의료진과 119 구급대원들과는 차이가 있을 텐데, 호흡은 잘 맞나?
제가 낯을 가리지는 않습니다만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족 같아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구급대원들에게 폐가 될까 봐 긴장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구급대원들보다 폭넓은 의료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큰 도움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자만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느끼게 됐습니다.
응급상황 대처라든지,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등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배운다는 생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응급처치는 구급대원들이 대부분 하시고, 저는 의사로서의 경험과 인프라를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119 구급대원들과 화재 현장, 응급 구호 현장을 누비고 있는데, 의사로서 체감하는 현장의 모습은?
강남소방서에서 저의 활동을 허락해 주셨을 때, 사실 쉽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영동안전센터와 제 병원이 인접해 있기도 하고,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영동센터 관할 지역에서만 활동한다면 그다지 힘들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근무하는 야간에만 적게는 10회 많게는 20회가량의 출동이 발생하고, 관할 지역(논현 1·2동, 압구정동, 신사동)뿐만 아니라 서초구와 송파구까지 출동하는 상황이라 많이 놀랐습니다. 쉴 틈이 없더라고요.
게다가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곳은 병상이 비거나 응급 대처가 가능한 병원을 찾다 보니 하루 밤새 강남·강북 지역을 5번 넘게 왕복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저희 팀 구급대원들한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급하면 경기도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웃더군요. 고작 2~3주에 한 번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고, 동시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119 대원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119 외에도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여하는 활동은 무엇이 있나?
강남구 의사회에서 지원하는 기부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남구에도 적지 않은 수의 저소득 가정이 있는데, 이 중 의료지원이 절실한 분들에게 수술비나 의료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형외과 전문의인 만큼 화상 환자 치료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회장이 된 이후로는 장래가 촉망되는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끈을 놓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강남구 의사회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진행하고 있고, COVID 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활동이 많은 관공서에 마스크와 핫팩 등을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정부기관의 요청을 받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단체에서 월 1회 지역봉사를 수행하고 있고, 연 1회 해외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선한의료포럼이라는 비영리 의료법인인데요. 많은 의료진의 참여와 여러분들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티 내는 것 같아 쑥스럽습니다만, 마저 말씀드린다면 개인적으로는 119 구급 활동 참여와 지역아동센터 몇 곳이 후원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Q. 이렇게까지 봉사를 하는 이유는?
올해 초 한 청년에게 명문대에 진학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난 3년간 강남구 의사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했던 바로 그 청소년이었습니다. 장학금 수여식 이후 얼굴을 보지 못한 터라 서먹서먹한 대화가 이어졌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아마 내가 의대에 진학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끄럽지만 그 때 크게 느꼈습니다. 나눔이란 것이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감정이었구나 하는 것을.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구급대원의 출동이 사라지고 의사를 만나는 일이 줄어야 좋은 일이지만, 여전히 의사 황규석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미약하지만 제가 활동하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실 119 구급 활동은 시작한지 3개월 남짓입니다. 강남소방서에서 1년의 기간을 허락해 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야죠.